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나폴레옹 보나파르트/생애 (문단 편집) ==== 10월 18일, 퇴각 ==== 1812년 9월 초 나폴레옹은 남은 11만의 군대를 이끌고 텅 빈 [[모스크바]]를 점령했다. 9월 16일에 모스크바에 입성한 나폴레옹은 하늘을 찌르는 것과 같은 불타는 도심을 보게 된다. 사실 모스크바 시는 그 전날부터 붙기 시작한 불길이 꺼지지 않은 상태였고, 나폴레옹의 한 부관을 이에 대해, '''우리는 불의 대지 위, 불의 하늘 아래, 불의 두 벽 사이를 걸었다'''고 기록했다. 이 불은 4일 동안 지속됐고, 모스크바는 잿더미가 됐다. 이 잿더미의 모스크바에서 나폴레옹은 러시아 황제에게 평화 교섭을 제의했으나 러시아 황제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. 거기다 러시아의 추위는 나폴레옹이 예상했던 것 보다 일찍 다가왔다. 모스크바에 주둔 중인 프랑스군은 먹을 것도 잠 잘 곳도 없었다. 군대에는 겨울 옷이 없었으며, 추위와 허기에 지친 군인들이 먹을 것을 찾아 모스크바 교외에 나타나면 잠복하고 있던 러시아군이 이들을 습격했다. 나폴레옹은 이후 한 달 동안이나 모스크바에서 차르가 항복해오길 멍하니 기다리고 있다가 결국 [[10월 18일]]에서야 퇴각을 시작했고, 이 후퇴는 역사상 가장 처참하고 가장 유명한 퇴각이 되었다. 이후 식량도 없고 보급품도 떨어진 상태로[* 금방 끝날 줄 알고 방한복도 없이 왔고, 드넓지만 텅텅 빈 겨울의 땅에서 물자를 조달할 방법은 없었다.] 11월의 추위 속에서 게릴라와 싸우며 수많은 병력을 잃고 말았다. 거디가 엎친데 덮친격으로 나폴레옹이 모스크바의 크렘린 궁에 들어간 저녁 화재가 일어나 도시 전체가 6일 동안이나 큰불에 휩싸였고, 그 바람에 모스크바 대부분의 폐허로 변해버렸다. 동시에 이 절대의 기회를 기다리고 있던 쿠투조프의 러시아군의 반격작전이 본격적으로 개시되고, 이후 베레지나 강을 건너면서 수천 명이 익사하는 등 실패를 거듭하며 퇴각한 뒤에 12월에는 파리에서 쿠데타 소식이 전해지자 병사들마저 버리고 근위대 200명만 데리고 도망... 모스크바 입성 당시 10만 명이었던 나폴레옹의 군대는 스몰렌스크에 도착했을 때 병력이 절반으로 줄었다. 결국 40만이 전투&비전투 손실로 희생되고 10만여가 포로로 잡히면서 대육군은 이름만 남게 된다. 노명식이 쓴 <프랑스 혁명에서 파리코뮌까지, 1789~1871>에 따르면, 총 병력 60만 중 25만이 전사하고 10만 명이 포로가 되었으며 15만 명이 부상 또는 실종되었다고 한다. 러시아 원정은 이렇게 실패로 끝난 셈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